<div id="readability-page-1" class="page"><div><blockquote>
<p>교보문고에서 발간하는 리드잇zine 6호에 회사를 나와서 창업에 기웃거리다 다시 취직을 했던 2019년도 저의 이야기를 기고해 보았어요. 담당자분께 여쭈어보니 블로그에 올려도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아래 원고를 공유합니다. </p>
</blockquote>
<h2 id="회사와-창업-사이에서-1년">회사와 창업 사이에서 1년</h2>
<p>마산과 부산 사이에는 내가 잠시 머물렀던 진해 바닷가 마을이 있다. 명절에 내려와 이 마을을 지날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린다. 나는 2018년 12월에 창원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좀 쉬고 싶었고 어렴풋하게 창업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진해 바닷가 마을의 새 아파트로 이사도 하게 되었다. 그곳은 바닷가 근처라 아침이면 해안가 조깅을 할 수 있었고 정말 한적한,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내가 마을이라 표현해 시골이란 느낌도 들지만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 어촌 마을의 느낌이라고 할까?</p>
<p><img src="https://velog.velcdn.com/images/joosing/post/c7651bb1-41c2-4758-a04e-a1d73afeed43/image.png"></p>
<h2 id="회사를-그만두다">회사를 그만두다</h2>
<p>6년 조금 넘게 근무한 나의 2번째 회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흔히 꿈꾸는 자유로운 문화의 회사는 아니었다. 400여명의 직원 중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15명 정도였고 8시 출근 17시 퇴근에 19시 30분까지 잔업이라는 특이한 문화(선택적이었지만 대부분 정규 근무시간처럼 지켰다)를 가지고 있었다. R&amp;D 센터 건물에는 10시, 3시에 휴식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는데 휴식 시간에 웬만하면 쉬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답답한 점도 있었지만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 연차에 맡기 힘든 대규모 프로젝트 메인 개발자로 일해 보기도 했고, 전체 시스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보며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수행해 볼 기회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일하면서 내 자아가 죽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속해서 받았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이 벽을 많이 만난 것 같고, 누군가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여러 제약 아래에서 차단되었던 것 같다. 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능동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p>
<h2 id="1달-생활비-x-12개월">1달 생활비 X 12개월</h2>
<p>일단 이직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때 당시에 네트워크 패킷을 캡처해서 분석하는 일에 꽂혀 있었는데 막연히 이 분야와 관련된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8년 정도 일하며 한 번도 쉰 적이 없어서 충분히 쉬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냥 1달 생활비 곱하기 12개월 생활비를 모아두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p>
<h2 id="인생-첫-자유">인생 첫 자유</h2>
<p>8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너무 좋았다. 바닷가 마을에서 아침이면 일어나 조깅을 했고, 진해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책을 보고, 동네를 걸으며 아무 카페나 들어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경제적인 불안감이 있어서 멀리 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소소한 일상에서의 행복이 워낙 컸던 터라 큰 아쉬움은 없었다. 진해의 용원 도서관이라는 곳에 매일 출근 아닌 출근을 했는데 멀쩡한 도로를 두고 멀리멀리 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출근을 했다. 그때 당시 자동차 창문을 열어 젖히고 잔나비의 신나는 음악을 틀고 바닷가 도로를 달리던 너무 행복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아무런 제약도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었다. 완전한 자유였다. 돌아보면 내 기억이 있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그리고 직장인이 되기까지 이런 자유를 누렸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학생 때는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공부가 어려워 늘 불편했고 대학생 때는 프로그래밍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도 편안히 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35년 만에 내 인생 첫 자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행복했다.</p>
<h2 id="세상에-가치를-만들고-싶어">세상에 가치를 만들고 싶어</h2>
<p>첫 세 달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쉬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뭔가 좀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의 막연한 창업 아이템은 네트워크 패킷을 Wireshark 라는 프로그램이 캡처해 주면 애플리케이션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메시지를 분석해서 구조화된 정보로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메시지의 특정 요소들만 필요에 따라 필터링 할 수 있어 메시징 처리 시스템 간에 통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기 용이했다. 이걸 원래 Lua Script라는 언어로 개발해서 Wireshark에 플러그인으로 설치해야 했는데 사용자가 GUI 상에서 메시지 구조 정보를 입력하면 Lua Script 코드를 자동 완성해 주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 애플리케이션 소스코드에 메시지를 정의하는 코드 또한 자동 생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때 당시 C, C++을 생각함) 인터페이스 스펙을 명시한 문서도 함께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용자가 GUI에서 메시지 정보를 한 번만 입력하면 코드, 문서 그리고 메시지 분석 스크립트까지 All-in-one으로 생성하고 관리한다는 컨셉이었다. 그렇게 되면 개발자가 직접 디버깅 인프라를 개발하는 대신 만들어진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사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뿐만아니라 코드와 문서, 분석 스크립트 간의 동기화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어 무척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를 낸 이유는 이전 직장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했고 다른 회사 개발자들이 이 기능을 신기해 하면서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
<h2 id="어떻게-생존할-것인가">어떻게 생존할 것인가?</h2>
<p>분명 나에게 필요한 서비스였고, 나와 함께 한 많은 개발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내가 꿈꾸던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창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이 서비스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하고 누구에게 얼마에 팔면 내가 지속적으로 생존(경제적으로)할 수 있을까? 일단 방위산업 분야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는 상상도 못할 일이고, 설치형 라이선스를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라이선스 하나에 10만원이면 한달에 10개를 팔아야 100만원인데 한달에 10명의 고객이 구매할까? 서비스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Visual Studio 같은 IDE와 달리 개발자 한 사람이 매일 사용해야 하는 서비스가 아니었다. 통신 인터페이스가 정의되면 처음에 한 번 사용하고 인터페이스가 바뀔 때만 수정해 주면 되는 컨셉이라 회사마다(후하게 생각해도 팀마다) 한개의 라이선스만 사서 공유해서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10개라는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될 것인데 이 좁은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이 날지 의문이었다. 그럼 100만원에 파는 건 어떤가? 분명 편리하긴 한데 앞서 설명했지만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가 아니었고 이 서비스의 도움이 없더라도 개발자가 Lua Script 언어를 배우고 시간을 내어 직접 작성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100만원이라는 가격에는 물음표가 생겼다. 10만원 이하라면 개발자 개인이 자신의 귀찮은 일을 대신해 주길 기대하며 구매해서 사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 10만원 이하가 적절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 내 생존의 문제는 어떻게 하지? </p>
<h2 id="아쉬운-과거의-나">아쉬운 과거의 나</h2>
<p>나는 ‘얼마에 이 서비스를 팔면 내가 지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내 머리속에서 찾지 못했다. 세상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풀고 싶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왔는데 그 전에 나의 생존이라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이 서비스를 만들 동력을 잃어갔다. 결과적으로 나는 1년의 시간 동안 서비스를 만들지 못했다. 나는 그 때 너무 어렸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작고 핵심적인 기능만 담은 서비스를 일단 만들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다음 스텝을 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내 생각의 중심에는 완벽한 걸 만들어서 시장에 들고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완벽하지 않다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방위산업분야 외에는 통신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 작성하고 있는지 경험이 없었다. 내가 아는 건 TCP, UDP 프로토콜 위에서 직접 애플리케이션 프로토콜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훨씬 큰 시장은 HTTP라는 프로토콜 위에서 동작하고 있었다. 시장에 대한 무지였다. </p>
<h2 id="다른-생존의-길을-찾다">다른 생존의 길을 찾다</h2>
<p>그래서 다른 생존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서비스는 가치가 있는 것 같고 일단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 놓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도 나아가 보면 생각하지 못한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렇게 싫어하던 외주 용역을 할 길이 없을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외주 일자리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유는 특이한 내 기술스택 때문이었는데, 나는 당시에 C, C++ 기반 TCP, UDP 통신 프로그램 개발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외주 시장을 뒤져보니 대부분 웹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의뢰를 하고 있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통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른 길을 찾아보다가 국가에서 지원하는 여러 창업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기는 회사를 그만두고 9개월 가량이 지난 시점이었다. 경남에는 경남창조경제혁신 센터라는 곳이 있었는데 창업특공대라는 교육을 일정 주기로 개최하고 있어 교육에 참가하게 되었다. 정말 아차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자 마자 이런 곳에 와서 교육을 받고 여러 창업자들과 교류하고 멘토링도 받고 했어야 한다고 느꼈다. 교육을 통해 창업아이템 발표를 하고 우수교육팀 3팀에 선정되어 30만원이라는 달콤한 수익도 얻었는데 그때는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다 차갈 때 즈음이었다. 교육 이후에 창업지원센터에서 창원 지원금을 꽤 큰 돈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걸로 생존할 수 있겠다는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창업자의 월급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었다. 좌절이었다. 그때 즈음부터 다시 취직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슬슬 이력서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가 갑자기 투자를 해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하던 철없던 시절이기도 했다.</p>
<p><img src="https://velog.velcdn.com/images/joosing/post/cee5055f-5c6d-41f0-87cb-4d7d49d685b8/image.png"></p>
<h2 id="생존의-실패">생존의 실패</h2>
<p>결국 모아두었던 돈으로는 1달을 버틸 수 있는 벼랑 끝에 선 시기가 왔다. 가장 쉽게 취직할 수 있는 길은 방산회사로 가는 것이었다. 이전 직장 선배의 추천 제안도 있었지만 방산회사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우주산업 분야인 지금 회사로 오게 되었다. 창업을 위한 생존의 실패이자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렸다.</p>
<h2 id="상대방의-관점">상대방의 관점</h2>
<p>1년이라는 시간 아무 성과 없이 허무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그 당시 자주 시청하던 세바시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박신영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쓴 ‘기획의 정석’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는데 이 책이 내 생각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일명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상대방의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주듯 하라’는 조언이었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무언가 전달해야 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게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고 내 삶의 여러 영역에 실천해 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나는 교회에서 초등학교 아이들 교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여기서 많은 것들을 기획해서 도전하고 시험해 보게 된 것 같다. 교회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때 아이들 입장에서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면 잘 와닿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서기라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여러 자료들을 만들고 행사 기획을 돕는 일들을 했다. 그때 내 생각의 몇몇 결과물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교회에서 흔히 내는 십자말 성경퀴즈가 있는데 이걸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을지 고민하다가 ‘러닝퍼즐’이란 걸 기획했다. 아이들 관점에서 옛날 것으로 보이는 십자말퀴즈 종이를 게임 화면과 믹스해서 문제지를 만들고 그냥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 공간을 뛰어다니며 공간 안에서 답을 찾는 움직이는 십자말퀴즈였다. ‘러닝퍼즐’은 고리타분한 퀴즈를 귀찮아 하던 아이들 까지도 온통 교회를 뛰어다니게 만들었고, 중간중간 있는 성경책을 읽어야만 풀 수 있는 퀴즈도 엄청나게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보았던 것 같다. 1년이라는 시간 ‘상대방의 관점’ 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내 인생에 일어났다. 어떤 것을 만들더라도 상대방의 관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후 지금까지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p>
<p><img src="https://velog.velcdn.com/images/joosing/post/a5bc0d89-e859-470b-bd60-040dd47ddfbe/image.png"></p>
<h2 id="아련한-추억">아련한 추억</h2>
<p>지금 회사에서 일하다 힘들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늘 2019년의 기회에 왜 더 잘 하지 못했을까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이상하게 이후에 그 도시를, 그 도서관 곁을 일부러 지나가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려온다.</p>
<h2 id="딤섬">딤섬</h2>
<p>내게는 또다른 추억 하나가 있다. 오래전 장모님과 아내와 부산 신세계백화점 안에 있는 딤섬을 먹었던 기억이다. 태어나 처음 딤섬이란 걸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다시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못 가고 있던 터였다. 올해는 마음을 먹고 장모님을 모시고 다시 그곳에 갔다.  음, 근데 내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추억하고 다시 먹고 싶다고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니다. 음식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제 나는 그때 처럼 딤섬을 처음 먹어 본 것이 아니고 그때와 나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을 스쳐지나 간다. 진해에서의 2019년 추억도 이렇지 않을까? 그때와 나는 다르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다시 그때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 상황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찾고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2019년의 추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접어두기로 한다.</p>
<p><img src="https://velog.velcdn.com/images/joosing/post/9e89c7a6-4995-4f04-98f9-2e13ea55b857/image.png"></p>
<h2 id="새로운-기회를-향한-이동">새로운 기회를 향한 이동</h2>
<p>회사와 창업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2020년 우주 스타트업 컨텍이라는 회사를 만나 새롭게 둥지를 틀게 되었다. 물론 아름다운 도시 진해를 떠나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세종시로 이사도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전혀 새로운 프레임워크, 전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전혀 새로운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통해 커다란 지상국 안테나가 저 먼 곳 우주에 있는 인공위성을 따라가며 데이터를 받는 일을 한다. 나는 이곳에서 우주로부터 오는 데이터를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가치 있는 일을 능동적으로 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마음에 갈증이 있었던 곳에서 주저하며 머물러 있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오늘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기회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이번에는 작게 제품을 만들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해 나가는 일을 해볼 것이다. 생존에 대한 계획도 조금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세워 진짜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이다. 혹 누군가 나와 같이 막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거나 창업을 꿈꾼다면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그래도 무작정 그만두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나처럼 잊지 못 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로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p>
<p><img src="https://velog.velcdn.com/images/joosing/post/7c634f05-6ab3-41e5-8e7a-51e014580cb8/image.png"></p></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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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발간하는 리드잇zine 6호에 회사를 나와서 창업에 기웃거리다 다시 취직을 했던 2019년도 저의 이야기를 기고해 보았어요. 담당자분께 여쭈어보니 블로그에 올려도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아래 원고를 공유합니다. 
회사와 창업 사이에서 1년
마산과 부산 사이에는 내가 잠시 머물렀던 진해 바닷가 마을이 있다. 명절에 내려와 이 마을을 지날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린다. 나는 2018년 12월에 창원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좀 쉬고 싶었고 어렴풋하게 창업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진해 바닷가 마을의 새 아파트로 이사도 하게 되었다. 그곳은 바닷가 근처라 아침이면 해안가 조깅을 할 수 있었고 정말 한적한,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내가 마을이라 표현해 시골이란 느낌도 들지만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 어촌 마을의 느낌이라고 할까?
회사를 그만두다
6년 조금 넘게 근무한 나의 2번째 회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흔히 꿈꾸는 자유로운 문화의 회사는 아니었다. 400여명의 직원 중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15명 정도였고 8시 출근 17시 퇴근에 19시 30분까지 잔업이라는 특이한 문화(선택적이었지만 대부분 정규 근무시간처럼 지켰다)를 가지고 있었다. R&D 센터 건물에는 10시, 3시에 휴식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는데 휴식 시간에 웬만하면 쉬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답답한 점도 있었지만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 연차에 맡기 힘든 대규모 프로젝트 메인 개발자로 일해 보기도 했고, 전체 시스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보며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수행해 볼 기회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일하면서 내 자아가 죽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속해서 받았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이 벽을 많이 만난 것 같고, 누군가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여러 제약 아래에서 차단되었던 것 같다. 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능동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1달 생활비 X 12개월
일단 이직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때 당시에 네트워크 패킷을 캡처해서 분석하는 일에 꽂혀 있었는데 막연히 이 분야와 관련된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8년 정도 일하며 한 번도 쉰 적이 없어서 충분히 쉬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냥 1달 생활비 곱하기 12개월 생활비를 모아두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인생 첫 자유
8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너무 좋았다. 바닷가 마을에서 아침이면 일어나 조깅을 했고, 진해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책을 보고, 동네를 걸으며 아무 카페나 들어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경제적인 불안감이 있어서 멀리 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소소한 일상에서의 행복이 워낙 컸던 터라 큰 아쉬움은 없었다. 진해의 용원 도서관이라는 곳에 매일 출근 아닌 출근을 했는데 멀쩡한 도로를 두고 멀리멀리 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출근을 했다. 그때 당시 자동차 창문을 열어 젖히고 잔나비의 신나는 음악을 틀고 바닷가 도로를 달리던 너무 행복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아무런 제약도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었다. 완전한 자유였다. 돌아보면 내 기억이 있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그리고 직장인이 되기까지 이런 자유를 누렸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학생 때는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공부가 어려워 늘 불편했고 대학생 때는 프로그래밍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도 편안히 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35년 만에 내 인생 첫 자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가치를 만들고 싶어
첫 세 달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쉬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뭔가 좀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의 막연한 창업 아이템은 네트워크 패킷을 Wireshark 라는 프로그램이 캡처해 주면 애플리케이션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메시지를 분석해서 구조화된 정보로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메시지의 특정 요소들만 필요에 따라 필터링 할 수 있어 메시징 처리 시스템 간에 통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기 용이했다. 이걸 원래 Lua Script라는 언어로 개발해서 Wireshark에 플러그인으로 설치해야 했는데 사용자가 GUI 상에서 메시지 구조 정보를 입력하면 Lua Script 코드를 자동 완성해 주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 애플리케이션 소스코드에 메시지를 정의하는 코드 또한 자동 생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때 당시 C, C++을 생각함) 인터페이스 스펙을 명시한 문서도 함께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용자가 GUI에서 메시지 정보를 한 번만 입력하면 코드, 문서 그리고 메시지 분석 스크립트까지 All-in-one으로 생성하고 관리한다는 컨셉이었다. 그렇게 되면 개발자가 직접 디버깅 인프라를 개발하는 대신 만들어진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사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뿐만아니라 코드와 문서, 분석 스크립트 간의 동기화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어 무척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를 낸 이유는 이전 직장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했고 다른 회사 개발자들이 이 기능을 신기해 하면서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분명 나에게 필요한 서비스였고, 나와 함께 한 많은 개발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내가 꿈꾸던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창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이 서비스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하고 누구에게 얼마에 팔면 내가 지속적으로 생존(경제적으로)할 수 있을까? 일단 방위산업 분야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는 상상도 못할 일이고, 설치형 라이선스를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라이선스 하나에 10만원이면 한달에 10개를 팔아야 100만원인데 한달에 10명의 고객이 구매할까? 서비스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Visual Studio 같은 IDE와 달리 개발자 한 사람이 매일 사용해야 하는 서비스가 아니었다. 통신 인터페이스가 정의되면 처음에 한 번 사용하고 인터페이스가 바뀔 때만 수정해 주면 되는 컨셉이라 회사마다(후하게 생각해도 팀마다) 한개의 라이선스만 사서 공유해서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10개라는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될 것인데 이 좁은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이 날지 의문이었다. 그럼 100만원에 파는 건 어떤가? 분명 편리하긴 한데 앞서 설명했지만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가 아니었고 이 서비스의 도움이 없더라도 개발자가 Lua Script 언어를 배우고 시간을 내어 직접 작성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100만원이라는 가격에는 물음표가 생겼다. 10만원 이하라면 개발자 개인이 자신의 귀찮은 일을 대신해 주길 기대하며 구매해서 사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 10만원 이하가 적절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 내 생존의 문제는 어떻게 하지? 
아쉬운 과거의 나
나는 ‘얼마에 이 서비스를 팔면 내가 지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내 머리속에서 찾지 못했다. 세상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풀고 싶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왔는데 그 전에 나의 생존이라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이 서비스를 만들 동력을 잃어갔다. 결과적으로 나는 1년의 시간 동안 서비스를 만들지 못했다. 나는 그 때 너무 어렸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작고 핵심적인 기능만 담은 서비스를 일단 만들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다음 스텝을 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내 생각의 중심에는 완벽한 걸 만들어서 시장에 들고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완벽하지 않다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방위산업분야 외에는 통신 프로그램을 어떤 식으로 작성하고 있는지 경험이 없었다. 내가 아는 건 TCP, UDP 프로토콜 위에서 직접 애플리케이션 프로토콜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훨씬 큰 시장은 HTTP라는 프로토콜 위에서 동작하고 있었다. 시장에 대한 무지였다. 
다른 생존의 길을 찾다
그래서 다른 생존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서비스는 가치가 있는 것 같고 일단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 놓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도 나아가 보면 생각하지 못한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렇게 싫어하던 외주 용역을 할 길이 없을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외주 일자리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유는 특이한 내 기술스택 때문이었는데, 나는 당시에 C, C++ 기반 TCP, UDP 통신 프로그램 개발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외주 시장을 뒤져보니 대부분 웹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의뢰를 하고 있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통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른 길을 찾아보다가 국가에서 지원하는 여러 창업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기는 회사를 그만두고 9개월 가량이 지난 시점이었다. 경남에는 경남창조경제혁신 센터라는 곳이 있었는데 창업특공대라는 교육을 일정 주기로 개최하고 있어 교육에 참가하게 되었다. 정말 아차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자 마자 이런 곳에 와서 교육을 받고 여러 창업자들과 교류하고 멘토링도 받고 했어야 한다고 느꼈다. 교육을 통해 창업아이템 발표를 하고 우수교육팀 3팀에 선정되어 30만원이라는 달콤한 수익도 얻었는데 그때는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다 차갈 때 즈음이었다. 교육 이후에 창업지원센터에서 창원 지원금을 꽤 큰 돈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걸로 생존할 수 있겠다는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창업자의 월급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었다. 좌절이었다. 그때 즈음부터 다시 취직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슬슬 이력서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가 갑자기 투자를 해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하던 철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생존의 실패
결국 모아두었던 돈으로는 1달을 버틸 수 있는 벼랑 끝에 선 시기가 왔다. 가장 쉽게 취직할 수 있는 길은 방산회사로 가는 것이었다. 이전 직장 선배의 추천 제안도 있었지만 방산회사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우주산업 분야인 지금 회사로 오게 되었다. 창업을 위한 생존의 실패이자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렸다.
상대방의 관점
1년이라는 시간 아무 성과 없이 허무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그 당시 자주 시청하던 세바시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박신영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쓴 ‘기획의 정석’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는데 이 책이 내 생각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일명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상대방의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주듯 하라’는 조언이었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무언가 전달해야 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게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고 내 삶의 여러 영역에 실천해 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나는 교회에서 초등학교 아이들 교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여기서 많은 것들을 기획해서 도전하고 시험해 보게 된 것 같다. 교회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때 아이들 입장에서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면 잘 와닿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서기라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여러 자료들을 만들고 행사 기획을 돕는 일들을 했다. 그때 내 생각의 몇몇 결과물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교회에서 흔히 내는 십자말 성경퀴즈가 있는데 이걸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을지 고민하다가 ‘러닝퍼즐’이란 걸 기획했다. 아이들 관점에서 옛날 것으로 보이는 십자말퀴즈 종이를 게임 화면과 믹스해서 문제지를 만들고 그냥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 공간을 뛰어다니며 공간 안에서 답을 찾는 움직이는 십자말퀴즈였다. ‘러닝퍼즐’은 고리타분한 퀴즈를 귀찮아 하던 아이들 까지도 온통 교회를 뛰어다니게 만들었고, 중간중간 있는 성경책을 읽어야만 풀 수 있는 퀴즈도 엄청나게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보았던 것 같다. 1년이라는 시간 ‘상대방의 관점’ 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내 인생에 일어났다. 어떤 것을 만들더라도 상대방의 관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후 지금까지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아련한 추억
지금 회사에서 일하다 힘들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늘 2019년의 기회에 왜 더 잘 하지 못했을까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이상하게 이후에 그 도시를, 그 도서관 곁을 일부러 지나가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려온다.
딤섬
내게는 또다른 추억 하나가 있다. 오래전 장모님과 아내와 부산 신세계백화점 안에 있는 딤섬을 먹었던 기억이다. 태어나 처음 딤섬이란 걸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다시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못 가고 있던 터였다. 올해는 마음을 먹고 장모님을 모시고 다시 그곳에 갔다.  음, 근데 내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추억하고 다시 먹고 싶다고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니다. 음식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제 나는 그때 처럼 딤섬을 처음 먹어 본 것이 아니고 그때와 나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을 스쳐지나 간다. 진해에서의 2019년 추억도 이렇지 않을까? 그때와 나는 다르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다시 그때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 상황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찾고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2019년의 추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접어두기로 한다.
새로운 기회를 향한 이동
회사와 창업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2020년 우주 스타트업 컨텍이라는 회사를 만나 새롭게 둥지를 틀게 되었다. 물론 아름다운 도시 진해를 떠나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세종시로 이사도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전혀 새로운 프레임워크, 전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전혀 새로운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통해 커다란 지상국 안테나가 저 먼 곳 우주에 있는 인공위성을 따라가며 데이터를 받는 일을 한다. 나는 이곳에서 우주로부터 오는 데이터를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가치 있는 일을 능동적으로 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마음에 갈증이 있었던 곳에서 주저하며 머물러 있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오늘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기회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이번에는 작게 제품을 만들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해 나가는 일을 해볼 것이다. 생존에 대한 계획도 조금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세워 진짜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이다. 혹 누군가 나와 같이 막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거나 창업을 꿈꾼다면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그래도 무작정 그만두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나처럼 잊지 못 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로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새로운 기회를 향한 이동 (교보문고 리드잇 6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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